150년 전, 독일 과학자 루돌프 버쇼(Rudolph Virchow)는 만성염증과 악성종양이 상당히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매개체에 의해 만성염증과 악성종양이 관련된 것인지, 상세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약 150년 만에, 이에 대한 비밀이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아론 시카노버(Aaron Ciechanover)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 박사와 권용태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팀이 공동연구를 통해 만성염증과 악성종양에서 핵심적으로 역할 하는 엔에프 카파 B(NF-kB) 전사인자의 대사과정을 밝힌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널인 ‘셀(Cell)’ 지에 지난 4월 10일 출판되기도 했다.
만성염증과 악성종양의 관계
권용태 서울대 교수팀은 엔에프 카파 B 전사인자의 대사과정을 밝혔으며, 이 대사과정을 담당하는 KPC1 유비퀴틴 리가제(ubiquitin ligase)가 강력한 종양억제 단백질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150년 전부터 사람들은 염증과 암이 어떤 상관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염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암에 걸릴 확률, 즉 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던 거죠. 하지만 과연 ‘왜 그런가’ 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바가 없었어요. 이번 저희팀의 연구는 바로 ‘왜 그런가’의 지점을 밝힌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에프 카파 B는 DNA에서 RNA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단백질을 새로 합성하게 하는 전사인자다. 엔에프 카파 B의 주된 역할은 스트레스에 반응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포가 이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세포의 생사와 성장, 및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엔에프 카파 B는 사이토카인(cytokine), 자외선,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감염 등 스트레스 신호전달체계에서 면역 및 만성염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종류의 암에서도 과발현 돼 암세포의 생존 및 전이에 도움이 되는 단백질들을 만들어낸다.
“엔에프 카파 B는, 한 마디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총 책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증반응이란 바이러스 감염 혹은 자외선 노출 등의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세포가 살아남기 위해 면역체계를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즉 아픈 곳을 다시 낫게 하기 위해 신체가 염증과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 대장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역할 때문에 엔에프 카파 B는 세포를 보호한다고 알려졌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엔에프 카파 B가 염증 까지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기 위한 엔에프 카파 B의 활동이 오히려 염증세포까지 보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골고루 보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라고나 할까요.”
권용태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엔에프 카파 B가 유비퀴틴화를 통해 생산 및 분해가 조절되는 생화학적 기작을 자세히 밝혔다. 더불어 앞서도 언급했듯 엔에프 카파 B의 서브유니트(subunit) 전구체인 p105를 유비퀴틴화 시키는 KPC1 유비퀴틴 리가제(ubiquitin ligase)가 강력한 종양억제제로 작용하는데 것도 밝혀 엔에프 카파의 암 기전을 규명했다.
“과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결국 디테일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아이폰을 디자인 할 때 디테일과 아트(art)를 결합했잖아요. 저희팀의 연구 역시 섬세함 안으로 더욱 들어가 원칙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백질 대사는 한 번 일어나면 완전히 없어지게 돼요. 세포 내 대사가 일어난 다음에는 세포가 없어진다는 뜻이에요. 이미 없어졌으니 상대적으로 연구가 어려운 거죠. 때문에 한 단백질이 없어지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구의 핵심, 분자생물학적 디테일
엔에프 카파 B는 두 개의 유닛으로 이뤄져 있다. p65와 p50이 그것으로, 기존의 연구는 이 두 유닛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다. 하지만 권용태 교수팀은 p50이 암 억제 있어 강력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때문에 앞으로 이를 이용할 경우 p50이나 KPC1을 타깃으로 하는 신약개발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었다.
“이번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을 이야기 하자면 결국 분자생물학적인 디테일을 알아냈다는 데 있습니다. 기존에 막연했던 기전이 밝혀진 만큼 이를 바탕으로 신약 개발을 새롭게 디자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자인이 잘 된 신약이 결국 적중률도 높으니까요.”
이번 연구는 서울대가 추진하는 노벨상 수상자 초청사업의 연장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한 후 교수로 임명,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이번 연구는 아론 시커노버 박사와 함께한 연구로, 아론 박사는 지난 2004년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의 조절기작을 최초로 발견해 기능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은 단백질대사의학연구센터를 설립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센터에서는 단백질 대사라는 기초과학 외에도 단백질 대사가 관계하는 질병, 퇴행성 뇌질환 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는 결국 기초연구지만 우리 현실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약 서른 명 되는 교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합니다.”
단백질 대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서울대 연구센터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과학자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갖고 밀도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풍부한 잠재력을 보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이에 대해 “다양한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밀접하게 연구를 진행하는 만큼, 서울대 단백질대사의학연구센터의 수준은 매우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기전적인 연구를 임상적인 연구로 전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도 전했다.
“지금 우리 센터에서는 학생들이 단백질 대사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이에 따라 날이 다르게 좋은 결과를 얻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 과학적 세대 뿐 아니라 저희 아래의 과학적 세대도 조만간 이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국산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고 희망하고, 또 믿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도 연구자로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20년 전,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것인가 고민하고 다짐한 게 있어요. 현재 당장 유행하는 연구보다, 당장은 주목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연구를 묵묵히 해나가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단백질 대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으니까요.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더해 앞으로 제 손으로 꼭 신약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쟁력 있는 국내 기술의 신약을 만들어 자체적인 경쟁력을 신장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